서문
알레프를 발견하는 자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데 이때 알레프는 '시인에게서 결코 빼앗아갈 수 없'고 '양도될 수도 없'는 시인만의 시선이다. '손바닥만한 우주'로 존재하는 이 알레프는 딜레마와 모순을 그대로 품고 있는 심연이기에 시로만 쓰일 수 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쓴다. "나는 어떤 지점에서나 어떤 각도에서도 알레프를 보았다. 그리고 알레프 안에서 나는 지구를 보았고 지구 안에서 알레프를......"([알레프])(5)
보르헤스는 다른 작품에서 알레프의 현현과도 같은 '한 편의 시'에 대한 우화를 전한다. 황제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갖춘 가장 완벽한 자신의 궁전을 시인에게 보여준다. 시인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궁전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망나니가 사는 섬에 이른다. 시인은 자신이 보았던 궁전의 모든 광경을 한 편의 시에 담아 낭송한다. 시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고, 황제는 "네가 내 궁전을 훔쳤도다!"([궁전에 관한 우화])라고 탄식하며 망나니의 쇠칼로 시인의 목을 베도록 명령했다. 그 시는 궁전의 모든 것과 함께 인간의 행복과 불행과 운명이 담긴 한 단어 혹은 한 행으로 되었다고만 전해질 뿐, 시 자체는 전해지지 않는다. (5-6)
이 알레프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순수의 전조])나, 스테판 말라르메의 아포리즘 "세계는 하나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줼 위레와의 대담)와도 맥을 같이한다. 더 거슬러 가면 존 던의 "모든 인류는 한 저자가 쓴 한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죽으면, 하나의 장이 책에서 찢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장이 더 나은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다."([인간은 섬이 아니다-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 17장)(6)
그리하여 시를 향해
리듬은 말을 걸고, 비유들은 손가락을 걸고, 이미지는 마술을 건다.
그러니 시는 세상에 말을 걸로 그 말에 손가락을 걸고 그 손가락에 마술을 건다.
화자는 시인을 걸고, 아이러니는 딴지를 걸고, 패러디는 수작을 건다.
그러니 시는 세상에 다르 나를 걸어놓고 다른 나를 향해 딴지를 걸고 그 딴지에 수작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