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먼저 말 거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이건 다수 안에서 소수가 살아남는 방식일 것이다. 소수자는 저절로 침묵하게 된다.(18)
엄마의 말과 생각은 얇고 흰 원단을 선명하게 물들이는 염료처럼 내게 스며들었다.(21)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 그런데 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 이 부엌에서 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26)
"내가 샀다니까. 그 딸을 샀어. 유대인들은 사랑하는 이가 죽게 생겼으면 그 사람을 팔아. 그래야 악마의 시야에서 벗어나니까? 엄마는 웃었다. "내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한테 나쁜 일이 안 일어나는 거야."... "로즈먼이 우리 집에 와서 말했지. '우리 딸이 다 죽어가. 우리 딸 사줄 거야?' 그래서 내가 샀어. 아마 10달러 주고 샀을걸."..."우리는 그 애를 살려야 했어."(34-5)
엄마, 커너, 네티, 사랑, 행복한 가정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이런 순간엔 우리가 모녀라는 게 마치 외계인이 전달한 메모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 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