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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_시집. 1. 이영주, 차가운 사탕들

이영주, 차가운 사탕들

종유석 

 

동굴 안에 주저앉아

물처럼 번져가고 있다

 

돌이 자라난다

 

마음이 추락하는 동안

 

공기를 닦고 있는 검은 손

 

아무리 문질러도

이곳은 밝아지지 않는다

한밤

밤의 한가운데

 

떠나간 사람은 떠나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흰 돌

 

아무리 닦아도

너의 눈 속이 보이질 않아

나의 일생을 

그저 닦아낸다는 것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돌처럼 자라고 있다

 

 

 

폭설

 

 사냥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국경에 이릅니다. 내가 나무에 묶어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늙은 개들. 

 

 북쪽에 있는 나무들이 햇빛을 받고 안쪽을 뾰족하게 갈아대는 시간입니다. 송곳니처럼 태양이 부족하고 심장을 잘 찢어야만 합니다. 

 

 어느 나라의 사람도 아닙니다. 살냄새를 맡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것은 떠나는 것도 아니고 걸어 다니고 있는 매일매일과 같습니다. 눈빛이 시려서 잘 씹을 수도 없는 나의 늙은 개들은 나무 밑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걸어가 그림자의 밑바닥가지 들어가려고요. 배가 고픈 것은 내가 아니고 나의 늙은 나무들. 하늘을 향해 이빨을 깨끗하게 뻗어 있습니다. 

 

 무겁고 축축한 배낭 안에 제일 질 좋은 사냥감을 담아 오겠습니다. 어느 시간의 사람도 아닙니다. 눈금을 지우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사냥의 끝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나게 될 단어를 꿈꾸고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서 달리는 나의 늙은 나무들. 어쩌면 그것을 몰고 국경 너머로 사라질지도 모르겟어요. 한 번도 사냥을 해본 적 없는 나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는 중입니다. 

 

 폭설이 내리고. 얼음 위에서 털모자를 쓰고 벗으며 웃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서요. 나는 이제부터 털 달린 사냥꾼이 되려고 합니다. 

 

 주머니 안쪽에 단 하나의 이빨을 넣고. 투명하게 얼어 있는 아이들 손을 잡아보려고. 

 

 

 

시각장애인과 시계 수리공 

 

 시계를 고쳐주고 돌아섭니다

 그는 창고에서 울고 있습니다 자신이 묻혀 사는 목소리를 떠나려고

 시간 밖에서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너의 손은 매우 젊구나 가장 낯선 부분을 만지면서

 

 때로 닫힌 눈을 생각할 대 그는 수수께끼라고 여겼습니다

 철근을 붙잡고 이것은 수수께끼라고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삶은 어떤 시간입니까

 돌아선 채 한 장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손으로 볼 수 있는 시계를 쥐여주고

 

 고대 슬라브 교회의 기도문에는 한숨이 있습니다 창고 문을 열고 소금과 감탄사, 머리카락과 눈물, 수염과 손가락 들을 모아놓은 죽은 목록을 들추어봅니다 모든 것은 명징하고 해독할 수 없는 양식만 남아 생활이 되었습니다 시계는 살아서 움직이고 이제 밖으로 가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사냥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눈물은 멈추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자신을 떠나려면 

 새로운 불행 속으로 들어가야 할가요 그는 고마워서

 내 손을 잡으며 젊은 자의 피부란 물고기 비늘처럼 비린 것

 

 문을 열어두고 가렴 나는 내가 그렸던 동그라미는 아니겠지 언젠가는 공백이 되겠지 텅 빈 것이 되면 지금을 남겨두려고 가장 낯선 손을 놓고 있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불행일지 몰라 허공을 만지고 있습니다 침묵 한 가운데에서 섬세하게 시계를 만지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구석 

 

 그는 조용해지고 조용해진다 이것은 그가 변하는 것일까 목소리가 변하는 것일까 너무 먼 길을 돌아서 너무 먼 유랑을 숨긴 채 그는 가고 있다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어떤 물질을 만지고 있으면 공기가 꽉 찬다

 

 구석에서 달아나려는 벌레의 수많은 발을 꾹꾹 누르면 저녁이 가라앉는다

 가슴에서 돋아나는 이 발들 창문이 뚝둑 떨어져 내리는 시간에는 크고 우아한 지네가 되는 것 같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벽이 아닌 곳에서도 구석을 만질 수 있다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 침묵 이것은 저녁이 변하는 것일까 가슴의 크기가 변하는 것일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침묵

 

구석은 맛없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이상하지? 왜 조용하다는 것은 슬픔을 과장하는 순간들이 모인 것인지 그는 새로 도착할 요일들이 과장한 대로 흘러가는 유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가슴 안에서만 자라는 이 많은 발들로 다른 세계로 가야 한다

 

 저녁이 사라진 후 누군가를 기다릴 수도 없게 되는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는 몰래 혼자 쓴 문장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녁 밖으로 뻗어가는 구석을 만지면서 걸어가고 있다 조용하고 아주 조용하게

 

 

 

공중에서 사는 사람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깊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땅으로 내려갈 수가 없네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싸우는 중입니다 지붕이 없는 골조물 위에서 비가 오면 구름처럼 부어올랐습니다 살냄새, 땀냄새, 피냄새

 

 가족들은 밑에서 희미하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덩이를 핥고 싶어서 우리는 침을 흘립니다

 

 이 악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공중을 떠도는 망령을 향하여 조금씩 옮겨 갑니다 냄새들이 뼈처럼 단단해집니다 

 

 상실감에 집중하면서 실패를 가장 실감나게 느끼면서 비가 올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이란 지붕도 벽도 있어야 할 텐데요 오로지 서로의 안쪽만 들여다보며 처음 느끼는 감촉에 살이 떨립니다 어쩌면 

 

 지구란 얇은 판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지 않으면 실족할 수밖에 없는 구멍 뚫린 곳 

 

 우리는 타오르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무너진 골조물에 벽을 세우는 유일한 방법

 

서서히 올라오는 저녁이 노래 바깥으로 흘러갑니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우리는 냄새처럼 이 공중에서 화석이 될까요

 

 집이란 그런 것이지요 벽이 있고 사라지기 전에 냄새의 이름도 알 수 있는

 

 우리는 울지 않습니다 그저 이마를 문지르고 머리뼈를 기대고 몸에서 몸으로 악취가 흘러가기를 우리는 남겨두고 노래가 내려가 떨고 있는 두 손을 핥아 주기를 

 

 

 

B01호 

 

 노인은 소리가 없다

 유리창이 빛을 찌르고 노인은 비명이 없다

 

 그저 묵묵히 뒷짐을 지고 창 너머를 바라볼 뿐 

 

그는 매일 아침 계단처럼 올라와 있다

복도를 지나 철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창문처럼 흔들린다 한 줌 햇볕을 손에 쥐고 

한 세기가 끝나갈 때 그는 지하로 들어왔다 

 

뒤에서 서늘한 칼끝이 들어오는 느낌 

매일 아침 시체가 되는 욕망

 

인간의 심장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욕망

 

노인은 나를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

날카로운 빛을 움켜쥐고 나를 찌르는 자기 자신을 

 

나는 유리창이 아닌데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지하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