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에 대한 네 개의 산문
1. 헤겔주의자의 고백
최인훈의 소설 속 긴장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긴장은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에게 부여한, 세계를 파악하는 태도의 표현이고 그러한 인물을 읽는 자들의 태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최인훈의 소설은 중대한 문제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진술하며 독자로 하여금 “불화의 세계”로 진입하게 한다.
최인훈의 소설 속 주인공은 왜 세계와 불화하는가? 그가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그 사회의 보편적 윤리, 그 모두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만강』의 동철, 『회색인』, 『서유기』의 독고준이 펼치는 유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유년은 그들이 성인이 된 시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지게도, 섬세하며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이와 같은 유년에서 성인으로, “천진난만함”에서 “자기 기만mauvaise foi의 연기”로 극단적인 이동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먼저 유년기의 공통된 소외감에 기반하고 있다. 아이는 “논리와 수식의 세계인 어른과 사회의 양면에서 소외”되어 있다. 독고준의 유년은 가족의 월남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며, 또한 그가 머문 공산사회에서도 소외된다. 또한 동철의 유년은 일제 치하의 조선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소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소외는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좌절로 인해 발생하는 이차적 소외이다. 즉 “ⅰ)상황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자를 선험적으로 배격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상황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ⅱ)그 상황은 거기에 적응하려는 자를 수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라는 이중의 생활 태도를 이들은 받아들인다.
소외된 자들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자와 책으로의 도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 양극화된 행동축만이 “양감 있게 현실을 극복하고 양감 있게 존재의 이유를 규명”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들의 양극화된 생활 방식은 다시 말해서, 혁명과 사랑의 삶이며, 최인훈의 소설들에는 이 두 극의 삶에 매달려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회색인』의 김학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혁명의 삶을 택한 인물이다. 김학이 말하는 혁명은 사회 개선이나 수입된 혁명 이념에 의한 사회 개조가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한 사회의 역사적 결단”이고 “순수한 삶”이며 “나와 나와의 싸움”이다. 이는 직업적 혁명가의 길이 아닌 문화사적인 혁명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회색인』,『서유기』의 독고준과 『서유기』의 독고민은 사랑의 삶을 택한 인물이다. 이는 혁명을 가능하게 할 이념이 한국의 현실에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식인이 살게 되는 삶이다. 한국 사회에는 봉건적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혁명 이념이 수입된다. 그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봉건성과 혁명성이 갈등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혁명 이념은 서구적인 자유인을 주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서구적 자유인은 근대적 인간, 즉 이념적으로 신학과 단절한 인간, 신이 죽은 시대의 인간이다. 이들이 느끼는 것은 고독감이지만 그와 함께 단독자로서의 해방감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해방감이 바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반역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한국적 상황은 봉건 유제로 인해 혁명 이념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적인 근대인은 해방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가장 끈질긴 가족 제도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이다. 그 가족으로부터 뿌리 뽑힌 인간은 자유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실된 가족에 대한 반동적인 집착과 그러한 질서에 대한 희구가 남는다. 그래서 한국의 뿌리 뽑힌 인간에게는 혁명이란 과거 지향적이고 그 고유한 진보성을 유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고준은 스스로가 선택한 “사랑”이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인훈 소설의 기본을 이루는 “사랑은 도피이며, 혁명은 좌절”이라는 도식은 헤겔적이다. 왜냐하면 최인훈에게서 혁명은 현실의 혁명이 아니라 낭만적 혁명이기 때문이고 이 낭만적 혁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사랑으로 도피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헤겔적 변증법은 우파의 논리를 따른다. 우파적 변증법에서 정은 즉자적 의식이며 반은 현실이고 합은 대자적 의식이다. 대자적 의식은 그 궁극적인 측면에서 절대정신으로 수렴되며 현실은 결국 의식 속에서 단순화되거나 사라진다. 반면 좌파의 변증법에서는 정은 즉자적 현실이고 반은 의식이며 합은 대자적 현실이 된다. 즉 이 논리는 절대정신으로의 수렴이 아니라 부정성을 매개로 현실 자체를 변혁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현은 최인훈의 변증법을 낭만주의로 규정하며 이는 결국 그의 변증법이 우파의 논리에 가깝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런 최인훈의 한계는 봉건성이 남아 있으며 자생적 혁명이론이 아니라 수입된 혁명 이론만이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2. 풍속적 인간 : 「크리스마스 캐럴」을 중심으로
한국 소설에 등장하는 근대인들은 일상성에 대한, 돈에 대한 모멸의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치명적 결점처럼 보인다. 시민 계급의 성장과 돈의 발달은 함께 일어나는데 이는 돈이 흔들리고 변화하고 유동하는 사회에서 커다란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돈은 유동하는 계급을 뒷받침하고 증거한다. 돈을 통해 계급의 외관은 극대화되며 이는 새로운 풍습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돈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의 암시적 의미”, “성립되고 있는 문화의 총체”를 이해할 때 현실과 인물의 다양성이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에 대한 멸시로 인해 이러한 풍습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근대화 과정에 대한 투철하지 못한 인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은 타인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는 두 가지 문제를 내포한다. 그 문제는 먼저 새로운 것의 수입에 따른 낡은 것의 대립과 저항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타자가 바로 이미 근대화된 제국주의 일본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근대화에 거역하는 것이 곧 애국적이라는 생각이 싹튼다. 이러한 기형적 방식의 근대화는 정당하게 형성되어야 할 풍습마저 왜곡하였다. 이는 한국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이런 상황이 한국 문학에서의 극단적인 급진주의와 극단적이 보수주의의 대립 관계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소설가의 가장 큰 역할은 상황을 비극적으로 포착하고, 사회가 변천하는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이때 사회의 변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바로 풍속이다. 풍속의 포착은 한국 소설 속 근대인을 더 생생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소설 속 근대인은 풍속적 인간이여야만 한다. 소설 속에서 사회의 상황을 포착하며 사회의 변동을 조절하는 인물이 바로 풍속적 인간이다. 이러한 풍속적 인간은 한 사회의 어떤 계층과 시대를 자르고 그 풍속도를 규명하려는 수평적 노력과 “고려하고 비난하기 위해 한 상황”, 혹은 풍속을 포착해 들어가는 수직적 노력의 두 면을 통해 한 사회의 변천 속도를 조절하고자 한다. 최인훈의『크리스마스 캐럴』은 수직적 노력의 흔적을 담고 있다.
최인훈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통해 크리스마스라는 비극적 현실의 한 단면, 혹은 풍속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적 풍습과 토속적 풍습 사이에서 고통을 겪는 풍속적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크리스마스는 한국 사회에서는 구속과 억압의 상징인 통금이 해제되는 날이다. 최인훈은 이러한 구속과 억압이 한국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수호 성녀로 불리는 여성을 통해 나타나는 서양의 구속과 한국적 구속은 다른 양상이다. 서구의 구속이 이미 피와 살이 되어버린 구속이라면 한국적 구속은 그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며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표피적이다. 크리스마스는 서구적 구속과 한국적 구속이 보여주는 틈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이 틈새 속에서 주인공은 그들의 풍속에, 역사 속에 잠입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고통. 이 고통은 과거의 토속적 사회 풍습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결국 주인공은 표피적 구속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산책을 행한다. 그 과정 속에서 중요한 가르침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경험적인 것을 선험적인 것으로 위장해서는 안 되”며 “경험적인 것을 경험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귀납적 경험을 통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경험적인 것을 경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풍속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최인훈은 말한다.
3. 정신의 치유술 : 「가면고(假面考)」소고
「가면고(假面考)」는 전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그 동안의 공백 기간을 어떤 가치 있는 것으로 메우려 하는 것에 대한, 말하자면 전쟁의 허망과 고독 속에 자기를 발견하려는 것에 대한, 작가의 공식적 발언이다. 주인공 민은 환경=상황과 그에 합당한 대응만 취하며, 해석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주어진 행위만을 연출하는 추상화된 인간의 표본이다. 하지만 민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는 두 가지 방향에서 소설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민은 타인에 대한 방향에서, 그리고 자기에 대한 방향에서 아이러니의 대상이 된다. 그는 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이야기마저 자신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민의 구원은 개체가 아닌, 전형으로서의 구원이다.
전쟁터 속에서 민은 타인의 사랑을 통해서는 자기는 영영 더워지지 않는다는 그 소원감과 자기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된다. 민은 전쟁과 전쟁이 야기한 죽음을 통해 유일하고 가능한 보상으로 사랑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민은 어떻게 사랑을 통해 구원되는가? 민의 구원은 에고의 테두리가 아닌 자기와 타인 사이에서 성립된다. 사랑은 너와 나 사이에 있으며 타인은 나 ․ 그것이 아닌 나 ․ 너로 파악해야 한다. 구원 역시 타인을 소유함으로가 아니라 나 ․ 너의 연관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최인훈은 이런 방식의 사랑과 구원이 전쟁을 지나온 사람들의 공백을 메울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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